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미국에 관한 기사

Discussion in 'Korea' started by Elliad, Apr 12, 2005.

  1.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This is an interesting article explaining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happening in the East Asia. I thought ppl who's interested in things like this should have a read.

    http://ucc.media.daum.net/uccmix/ne...157&u_b1.targetkey2=8816129&_right_popular=R7

    '믿었던 미국'이 일본을 배신한 3가지 이유



    [기고] 일본의 외교도발 완전히 뿌리뽑을 '한국의 4가지 전술'
    [프레시안 장성민/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대표]미일동맹과 한미동맹, 그리고 한중공조
    - 일본의 외교 도발을 어떻게 견제할 것인가?-

    1

    한중일 3국간에 펼쳐진 역사왜곡문제와 영토분쟁을 지켜보고 있었던 미국이 드디어 침묵을 깨고 말문을 열었다. 그 내용은 우리의 귀를 의심케 만든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일간 워싱턴 회의를 열만큼 일본과 외교군사적으로 절정의 허니문을 즐겼던 미국이었다. 그리고 한일간에 독도문제로 분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았고, 일본이 독도문제를 국제분쟁화시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할 경우 국제사법재판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의지를 갖고 있다는 것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던 미국이었다. 그런 나라의 국무장관 콘돌리자 라이스는 방한직전 방일중에 가진 한 대학(상지대학 )에서의 연설에서, 동북아에서 믿을만한 국가는 오직 일본뿐이라는 정치적 제스쳐를 내보이며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공개적으로 주장했었다. 미 국무장관의 이같은 주장은 방한중에 가진 기자회견장에서도 재천명됐었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미국의 의지는 단호하고도 단호해 보였다.

    그런 미국이 불과 며칠만에 자신들의 외교적 수사를 뒤집기 시작했다.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적극 지원하겠다는 기존 입장에서 서서히 발을 빼는 듯한 소극적 태도를 견지하다가 급기야 부정적 입장으로 돌변하고 있다. 아니,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일본이 주변국들과 분쟁에 빠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내심까지 표명했다. 사뭇 흥미로운 미국의 동맹관리 외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관심을 더욱 끄는 부분은 일본의 태도이다. 미국의 한반도 정책에 대한 기조 변화의 암시가 국무성 대변인의 언급을 통해 흘러나오자마자, 일본의 모리 전 수상(한일의원연맹 회장 )은 고이즈미 수상의 “화해 메시지”를 담은(?) 자신의 편지를 자민당의 한 젊은 참의원을 통해 한국의 집권당 대표에게 보냈는가 하면, 이 달말쯤 모리 전 수상 자신이 직접 고이즈미 수상의 친서를 갖고 방할 할 예정이라는 일본측 입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겉과 속이 다르고, 병 주고 약 주는 일본외교의 전형인 것이다.

    2

    독도문제, 역사 교과서 왜곡문제로 대한민국을 분노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후, 이런 열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이제 화해 메시지를 갖고 오겠다는 일본 외교의 속내를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 그리고 무엇을 읽어야 할까? 핵심은 세 가지이다.

    첫째, 미국을 읽어야 한다. 미국이 주변국들과의 불화와 분쟁을 이유로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하자마자, 한국에 화해 메시지를 들고오겠다고 허겁지겁 서두르는 일본외교의 조타수가 바로 미국이란 사실을 읽어야 한다.

    이를 역으로 해석할 경우, 지금까지 일본이 독도영토분쟁과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를 보다 공세적으로 펼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미국의 묵시적 동의가 있었거나 아니면 최소한의 심리적 지원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은 후쇼사 왜곡역사교과서를 만든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한 지도급 우익인사가 “우리 뒤에는 미국의 부시가 있다. 동요 말라”고 한 발언에서도 확인되었다.

    즉, 미국은 한미동맹이 약화되고 미일동맹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미국과의 동맹관계가 강한 나라가 어떤 힘을 얻게 되고, 동맹관계가 약한 나라는 어떤 상황에 빠지게 되는가를 한국정부와 국민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정부와 국민들이 한미동맹의 필요성을 보다 절박하게 느끼도록 만들고 싶었던 것이다. 보다 직접적으로 말한다면, 한미동맹이 약화되는 경우 한국은 냉전 때 우방으로 지냈던 일본에게서조차도 외교적 위협과 공격을 받아 영토분쟁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을, 그리고 그만큼 안보적 기반이 취약한 나라라는 “안보 경종”을 한국에 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이를 통해 주한미군의 주둔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동안 미국은 주한미군이 동북아 안정의 균형자라고 줄곧 강조해왔다. 그런 미국이 왜 한국과 일본이란 두 동맹국간의 영토분쟁에는 팔짱을 낀 채 강 건너 불구경하듯 방관자적 태도를 입장을 취했을까? 바로 여기서 우리는 미국의 속내를 읽어야 한다.

    둘째, 미일 동맹의 연대성이 얼마나 밀접한 단계에 와 있는가를 읽어야 한다. 9.11 직후 미국이 탈레반과 전쟁에 돌입하자 일본의회는 해상자위대를 인도양으로 파견하여 미-영이 주도하는 전함에 물과 연료를 제공토록 허용했다. 일본의회가 자국군대를 해외에 파견토록 결정한 것은 2차대전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해상자위대의 인도양 배치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를 소탕하는 미전투기의 공격능력에 또 하나의 엔진을 달아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21세기 반테러전을 향한 미일동맹협력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일본은 이라크침공 전쟁에서도 미국편에 섰다. 그리고 “부시의 전쟁”에 전폭적인 지지의 목소리를 보냈다. 2003년 2월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 침공에 대한 유엔 안보리의 승인을 얻어내려 노력하고 있을 때, 이라크에 대한 무력사용의 정당성을 주장한 두 국가 중 하나였다. 다른 한 나라는 호주였다. 2003년 9월에 일본정부는 이라크 나시리아에 1천명 규모의 자위대 파병을 결정했고, 자위대는 2003년 말과 2004년 초에 평화유지군 명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미일동맹에 관한 한 일본은 유럽의 영국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고, 미국은 일본을 동북아의 영국으로 만들고자 공을 들이고 있다. 미국의 한반도정책이 시침(時針 )이라면, 일본의 한반도 정책은 그 시침을 돌리고 예고하는, 그리고 시침보다 빨리 돌아가는 분침(分針 )이다. 미 국무성이 오랜 침묵을 지키고 있을 때는 일본은 독도와 왜곡역사교과서 문제에서 우리에게 매우 공세적인 외교전략을 폈다. 그러나 미국이 침묵을 깨고 더 이상 일본이 주변국가와 분쟁에 빠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우려를 표하자마자 일본은 우리에게 화해 제스쳐를 보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미일간의 외교적 긴밀성을 읽어야 한다. 그리고 일본이란 나라는 자국의 국익을 팽창시킬 수 있는 힘과 틈바구니를 발견하게 되면, 미일동맹을 틈타 언제든지 가차 없이 자국의 실리를 추구하는 나라라는 사실을 읽어야 한다.

    셋째, 우리 정치인들의 외교적 수준을 읽어야 한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국회에 독도특위를 구성하자고 아우성을 지르며 분노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일본의 한 젊은 국회의원이 화해 메시지를 가져왔다고 해서 여야 당 대표라는 분들이 아무런 경계심도 없이 만나 환담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정치인들의 외교적 수준을 읽어야 한다. 마치 일요일에 미 국무장관의 예방을 받는 우리 대통령처럼, 각 당의 비서실장도 아닌 당 대표라는 분들이, 중견급의 자민당 간부도 아닌 젊은 국회의원의 예방을 받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또 일본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국가의 정치인들과 외교관들, 기업인들과 국민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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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왜 미국은 갑자기 침묵을 깼을까? 그리고 일본의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원 태도를 바꾸기 시작했을까?

    첫째, 미국의 최대 우려 사항인 북핵 문제 때문이었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아직도 중국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고, 6자회담이 가장 합리적 해결기제란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한국정부가 미국과 입장을 같이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문제와 독도분쟁은 한일 양국을 감정대결로 치닫게 만들었고, 과거사 문제로 중국까지 일본과 적대적인 외교적 관계로 발전해 나갔다. 미국은 자칫 일본 때문에 북핵문제 해결이 더욱 어려워 질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다.

    둘째, 나아가 이것을 계속 방치할 경우 북핵 6자회담은 미-일을 한편으로 하고, 남-북-중-러가 다른 한편이 되는 2:4의 대립구도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미국은 판단한 것 같다. 그래서 한국과 중국에서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타이밍을 잡아 일본의 좌충우돌식 외교분쟁에 종지부를 찍고자 한 것이다. 북핵문제에 관한 한 일본보다는 한국과 중국의 역할이 훨씬 중요하기 때문에 한중 양국으로부터 우호적인 감정을 얻고자 한 것이다.

    셋째, 한국이 미국에서 자꾸 멀어져 중국 쪽으로 접근해 들어가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은 일본의 전례 없는 외교 공세의 배경에는 미일동맹에 의한 미국의 보이지 않는 힘의 뒷받침이 있다고 보았다. 이에 한-중 양국은 미일동맹에 대응하는 전략의 일환으로 상호간의 외교군사적 공감도를 높여 나갔다. 한국의 국방장관이 중국 국방장관의 초청으로 방중하여 군의장 사열까지 받은 것은 좋은 예시인 것이다. 여기에다 일본편에 서있는 미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결국 반미감정을 한층 강화시켰다. 한국 내에서는 반미의 감정이 더욱 고조되었다. 일본으로부터 영토분쟁에 휘말려 외교적 공세를 받으면 받을수록 미국은 한국이 미국의 군사적 힘을 절감할 줄 알았으나, 한국정부와 국민들은 오히려 그 반대였던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동북아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이러한 현상에 대해 미국은 불안감을 가지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4

    우리 정부는 일본의 외교적 도발에 대해 어떤 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할까? 4가지 전략적 사고가 필요하다.

    첫째, 한국정부는 일본정부로부터 왜곡 역사교과서에 대한 일정한 시정의 약속과 다시는 독도문제를 쟁점화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기 전에는 일본의 화해 메시지를 받아들이기 힘들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일본이 보내는 화해 메시지의 핵심은 독도를 재론하지 않겠다는 것과 왜곡역사교과서의 시정에 대한 의지여야 한다.

    둘째, 일본이 요청하고 있는 한일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일본정부의 공식 사과가 먼저 있든지, 아니면 '다음 일본 수상'과 만나 논의해볼 수 있다는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

    셋째, 중국정부와 협조를 긴밀히 해야 한다. 일본은 지금 양국 모두와 영토분쟁 및 과거사 왜곡 문제에 걸려있다. 일본을 압박하기 위한 양국공조의 토대가 마련되어 있는 것이다. 양국은 일본이 영토문제와 역사왜곡문제를 ‘또다시’ 도발하는 경우에는 북핵 6자회담장에 일본과 함께 앉을 수 없다는 점을 미국에 분명히 전달해야 한다.

    넷째, 일본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는 미국이다. 대미편승은 일본 외교전략의 알파이자 오메가이다. 한국외교는 이 점을 잘 활용해야 한다. 동맹에 대한 자국의 의무를 최소화하면서 동맹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자국의 안보를 극대화하는 동맹게임전략을 잘 연구해 나갈 필요가 있다.

    장성민/세계와동북아평화포럼대표
     
  2. rkim291968

    rkim291968 New Member

    Oct 6, 2004
    CA, USA
    Hmm. At times, the essay appears to entertain borderline conspiracy theories. The rest of what he says is very subjective. The story was funny at best. What did you think about it, Elliad?
     
  3.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No no, this is a very serious piece of journalism. It does point out quite interesting aspects of the current state of affairs.
     
  4. hanul21

    hanul21 Guest

    my korean isnt that good. i can read but just reading the title thread took me about a minute.

    i saw on this channel operated in cali and ny called TAN (The Asian Network, funny how they call it Asian network when its only korean stuff) but anyways there was something about Chinese attacking or they did something to the Japanese. i could vaguely understand it and the only part i really caught on was when the Japanese President said, "I hope this never happens again"
    any info on this?

    tsk tsk tsk.. what happened to Asia these days.. Tokdo, India and China fighting over border rights...
     
  5. hanul21

    hanul21 Guest

    oh nvm there was a thread in this forum saying soemthin about that.. nvm
     
  6.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일본에서 5년간 거주한 사람으로 일본에 대하여 쓰는 글 (펌 )

    일본에서 5년간 거주한 사람으로 일본에 대하여 쓰는 글

    2005/04/11 다음 미디어에서 펌


    독도와 2차대전의 성노예 사건, 그밖에 우키시마호,강제징용등으로 온 나라가 들끓고 있다.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많지만 일본에 5년간 거주하며 섬나라 민족의 여러가지 근성과 한국인에 대한 감정들을 몸소 체험했던 나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뭔가 착각(?)하고 있다는걸 글로서 알려주어야 겟다는 생각에 이글을 쓰게 되었다.

    1.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과 연대하면 뭔가 가능하다?

    한마디로 꿈깨라고 말하고 싶다.그런말하는 사람들은 대체 뭘 보고 그런말을 입에 담는 것인가?직접 일본인 만나보고 이야기 하는 것인가? 아마도 일본근처도 못가본 놈들의 헷소리다. 직접 그들과 이야기해보고 그들의 속마음을 보고도 그런말을 할수 있는지 알고싶다.

    그런말을 할수 있는건 학자로서 양심을 속이지 않고 어느정도 친한적인 성향을 가진 인본인학자 몇몇일 뿐이다. 미즈노를 보지 못했는가? 그가 한국에서 어떠했는가 일본에 있을때 들었다. 난 이미 알고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른 골수 식민주의자일 분이란걸. 나말고도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알고 있었다.

    보통의 일본학자들에게 물어보라.다케시마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100에 99.9999는 이렇게 대답한다.

    "한,일 모두 냉정히 대화와 타협을 통하여 해결하여야 한다."

    조금이라도 독도에 대해 연구해본 학자라면 자국의 억지가 얼마나 한국에 가증스러운 것인가를 알고 있다.하지만 그들은 절대로 독도가 한국땅이라는 말을 입밖에 내지 않는다. 겉으로 냉철히 서로가 대처해야 한다 말하지만 속마음은 어쨌든 우리땅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그것이 일본 보통학자들의 속마음이다.

    물론 자기자신들부터 얼마나 억지라는것을 알고있다.

    뭘 냉정히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하잔 말인가?내 땅을 가지고 왜 강도와 타협과 대화를 해야 한단말인가?

    소위 "양심적"이라는 일본놈들에게 가서 물어봐라.어떤 대답이 나오나?

    "한,일 모두 냉정히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걀국 독도는 일본의 영토라는 대답이다. 소위 양심적이라는 일본인들의 대답이 바로이것이다.

    다시말하지만 일본의 "양심적인"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허구는 절대 믿지마라.일본에서 3년이상 거주해보고도 그런말이 나오는 사람은 없다.




    2.일반적인 섬나라 민족의 근성.

    이건 내가 가장 싫어하는 부분이다. 간단히 말해서 어떤 일본인도 아시안들을 자신들과 대등하다고 생각지 않는다.자신들은 아시아에 낀 영국,미국,프랑스 일뿐 이라는 생각이 일본족의 기본 마인드이다.후쿠자와 유키치라는 사람이 있다. 근대 일본의 아버지로 추앙 받는 사람이다. 이사람이 꾸준히 주장한것이 뭔지 아는가?

    "일본은 서양의 열강에 합류하여 그들과 같이 아시아의 여러 열등민족을 지배하고 식민지로 삼아야하며 더이상 아세안이 자신들과 동족이란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들은 일본족의 지배를 받아야 하는 족속들이다."

    이런 자가 아직도 교과서에서 추앙 받는 교육을 하는 것이 일본이다.제발 착각에서 벗어나기 바란다.자신들이 아시안이라 생각하는 일본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류이후 일본인의 한국인식이 좋아졌네 뭐네....일본에서 살아본 사람들은 얼마나 우수운 착각인지 알고 있다.

    일본 아줌마들은 "준상"에게 반한것이지 배용준과 한국인에 반한것이 아니란 말이다.

    "국화와 칼"이라는 책이 있다. 일본인의 근성을 잘 보여준 명작이다.일본인은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하다. 물론 일본인들의 말처럼

    "강자에 약하고 약자에 강한것은 세상 누구나 어떤 국가라도 당연한 것이다."

    틀린말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민족은 그 도가 지나치다. 예를들어 우리나라에선 70넘은 음식점 주인이 손님이라 해도 10살난 꼬마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것을 보긴 여간해선 힘들다.

    일본은 다르다.돈을 쥐고 있는 손님이 돈을 쥐고 있는 강자인만큼 어떠한 상황이라도 손님은 왕이다.일본인들의 서비스 정신이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강자에게 약한 그 근성이 기본 마인드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반대를 살펴보자. 강자에게 유별나게 약하다는 것은 그만큼 약자에겐 강하다는 것이다.

    그 근성이 결국 식민지의 약자였던 조선의 처녀들을 잡아다 성노예로, 청년들을 총알 받이와 탄광,공장의 노예로 가혹하게 부렸다. 힘이 없는 약자에게 당연한 짓을 했을 분이다. 그들의 사고방식으로는.그것이 일본이다.(종군 위안부란 말을 쓰는데 그것은 절대 금해야할 말이다.종군위안부란말은 자발적으로 간 여자들이란 뜻이 담겨 있다.몰론 이들 성노예들은 일본의 패배가 확실해지자 "제국의 명예를 위해" 기관총과 일본도로 목을 치며 증거인멸을 노렸다.할머니들이 증언하듯 실제 살아돌아온수보다 일본군의 증거인멸을 위해 닥치는대로 강간당하고 외국을 또돌다가 결국은 일본인의 손에 살해당한 그 원혼이 어찌 눈을 감을수 있을 것인가...숨이 끊기는 순간 까지도 고향땅,어머니와 아버지를 그렸을 그들을 생각하면 조선인으로서 피가 끓는다.)

    이 사고방식은 현대에도 당연히 이어진다. 별 힘도없는 반도국가에 그들은 절대로 사과하지도 보상하지도 않는다. 약자에게 강한 일본이 어찌 보상을 하기를 기대한단 말인가?중국역시 이제서야 걸음을 디딜뿐이다.13억 인구가 우리나라의 두배밖에 안되는 경제력을 가질뿐이다.중국에게도 사과따윈 할수없다.군사력도 일본이 앞서고 있다.


    한발 더 나아가 약자인 한국,중국 땅을 빼았기 위해 악랄하고 비열한 수작을 부리고 있는 것이 일본이다.

    러시아에겐 "감히" 대들수 없다.어찌 미국과도 맞짱뜰수 있는 러시아에게 대적할 생각을 하는가! 현재 일본이 벌이는 세 분쟁에서 엄연히 말하자면 러시아의 4개섬은 일본땅이 맞고, 나머지 2곳은 순 억지 주장이다.다만 강자인 러시아에게 개길수는 없기 때문에 돈으로 구슬리다가 Kgb출신의 음흉한 푸틴이라는 놈을 만나 일이 꼬여가는 것 뿐이다.

    일본민족의 근성상 그것을 접는 것은 불가능하다.약자에게 유별나게 강한 그들은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


    3.일반 일본인의 전쟁인식과 전후 일본사회


    일반적인 일본인이라면 전쟁때에 벌어진 일을 "전쟁때는 어쩔수가 없다..."

    말꼬리를 흐리는 것이 보통이다. 독일과는 참으로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성노예,징용과 대학살 등에 대해서도 전쟁때에 벌어진 어쩔수 없는 일이고 보상문제도 다 없어졌는데 왜자꾸 들고 나오냐는 식이다.한발 나아가 대부분의 일본인들은 자국의 역사에서 성노예사건과 난징대학살등의 "부정적인" 요소를 빼주길 바라고 있다.다시 말하는데 정치가가 아니라 대부분이다.

    악마의 731부대에서 벌어진 그 생각해내기조차 어려운 생체실험과,난징 대학살을 벌인 인물들이 전후 일본의 고위직에서 일본국민들을 교육해왔다.

    생생한 예로 731부대에서 최고 책임자로 실험들을 진두 지휘하던 이시이 중장은 전후 도쿄대(우리나라로치면 서울대 ) 학장까지 올랐다.오죽했으랴.

    생쥐 만마리 잡아다 실험하는 것보다는 벌레보다 못한 중국인,조선인,소련인,미국포로 잡아다 실험한번이면 생생한 결과가 나오는데.....

    동상에 걸리면 37도의 물로 손과 발을 푸는 것이 가장 좋다는 지식도 이 악마의 실험으로 얻어진 치료법이다.(참고로 전후 미국은 이 실험결과를 넘겨받는 것을 대가로 이들을 문제삼지 않고 조용히 덮어주었다.)

    일본국내에서는 독립운동을 하던 조선인과 태평양에서 포로가된 미국포로가 생체실험의 재료가 되어 윤동주역시 일본에서 생체실험을 당하고 죽었다.


    일반적인 일본국민은 어떠한 죄책감도,사죄의 감정도 느끼지 않는다.그나마 진실에 스스로 근접해간 몇몇만이 올바르게 사태를 보고 있을 뿐이다.

    "전쟁때는 그것이 당연한 것이다.보상도 한일 협정으로 끝났는데 우리보고 어쩌란 말이냐!!"

    이것이 일본인 1000에서 999가 가지고 잇는 과거 인식이다.물론 다케시마는 일본의 영토이고.

    이 전쟁때는 어쩔수 없다는 인식은 과거에 대학살에 참여하고 "조선인 숫처녀가 제일이다!!" 외치며 우리의 할머니들께 달려들던 과거 일본군들이 전후 절대로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입을 열지 않는것을 봐도 알수 있다.

    피해자는 살아있는데 가해자는 다죽었나?다만 입을 열지 않을 뿐이고 그들이 바로 보통의 일본인들이다.


    60년전이다. 다죽은지 아냐? 생생히 살아 있다.아직도 동네에서 인심좋은 할아버지 인척 살아가고 있다. 적어도 그들이 입을 열고 진실을 말한다면 현재와 같은 일본정부의 "배째라,우린모르는 일이다."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과거 난징 대학살에 참여한 사실을 스스로 고백한 한 일본군출신은 동료들로부터 갖은 협박과 회유에 시달렸다.그는 후에

    "다만 진실을,내가 저지른 일을 말할 뿐이다.뭐가 잘못이라는 거냐!"

    라는 강한 불만을 일본사회에 쏟아 냈지만 아무도 그에게 호응하지 않았다.

    "나는 조선인을 이렇게 잡아갔다." 라는 죽기직전 참회의 눈물과 고백으로 쓴 책을 편찬한 사람은 매장당했으며 그 책은 일본에서 전혀 팔리지 않는 것이 일본이다.(요시다라는 이자는 서에서 자기혼자만 6000명의 조선인 처녀를 잡아다 성노예로 끌고갔다는 것을 밖혔다.)

    일본인의 전쟁에 대한 책임감은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원폭을 "홀로코스트"라 부르며 아우슈비츠에 비교하려는 것이 일본이다.

    참으로 기가막힌 작태이다. 태평약 전쟁을 일으켜 아시아의 모든 민족을 고통으로 끌고간 일본이 당연한 천벌을 받은 것을 어찌 피해자인척 할수 있으며 그렇다면 그들이 그토록 내세우는 "전쟁때는 어쩔수 없다."는 논리와도 맞지 않는다.

    전쟁에 이기려 원폭을 쓰는 것 당연한것 아닌가? 성노예와 강제징용,대학살은 당연하고 지네가 원폭 당한건 안된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본보통인들의 전쟁인식이다.

    제발 일본에 대한 착각에서 깨어나길 바라면서 쓰는 글이다.
     
  7.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일본에 5년간 거주한 사람으로서 쓰는 두 번째 글

    2005/04/13 오마이뉴스 "일본이 또 과거의 유령을 깨웠다" 기사의 답글


    4. 현재 한,일 간의 갈등의 근본적 원인

    대부분 사람들이 사건의 겉에서 다만 분노할 뿐 그 이면에 숨겨진 내막을 알지 못한다.
    일본놈들의 속셈과 왜 전과 달리 그 파문이 커졌는지 쉽게 설명해 주겠다.


    요즘 돌고 있는 대부분의 견해는

    "간단히 이야기해서 일본은 지금 당장 독도를 내놓으라고 하지도,
    군사적인 침략도 할수 없다. 미 7함대 앞에서 미국의 두 동맹이
    "라운드 원 파이트!" 한다는건 미국의 입장에선 가장 최악의 시나리오가 된다.
    강자에 약한 일본이 아무리 약자 한국에 땅을 빼앗고 싶어도 강자인 미국을 거스를 수는 없다.

    국제 사법 재판소엔 우리가 안가면 끝이다.
    결국 현재 일본으로선 나중을 위해 지속적으로 도발을 해두는 것이 최선의 상책이 된다."

    바로 이것이다.

    이러한 단순한 예상을 넘어서 좀더 심도 있게 생각을 해 보자.
    주한 일본대사가 그런 말을 지껄였다는 것은 엄연히 이야기해서 "추방"까지도 각오한 행동이다.

    한마디로 넘어선 안될 선을 넘었다는 이야기다.
    단순히 일본의 음흉하고 비열한 침략자들이 아무 생각없이 저런 쇼를
    벌인다는 생각은 우리 나라 사람 아무도 생각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행동은 단순히 지속적인 도발을 위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멀지 않은 기간동안 벌어질 행동과 관련 시켜 생각해야 한다.
    한마디로 이제 때가 되었다!! 라고 일본놈들은 판단한 것이다.


    그럼 독도 도발이 벌어진 후에 일어난 일을 생각해보자.
    무엇인가 일본의 정치적,군사적으로 중요한 변동을 가져올 일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바로 유엔 상임이사국 진출이다! 이것을 위해 일본은
    그 동안 심혈을 기울여 원조와, 경제지원,외교적 노력 등을 기울여 왔다.

    유엔상임이사국 진출은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이것은 일본이 20세기 초부터 지녀왔던 아시아의 패권을 공개적으로
    천명하는 의미 뿐 아니라 미국에게 받은 굴욕을 꾹 참아가며 고대하던
    "보통국가."가 되어 60년전 이루지 못했던 "전 아시아인의 노예화."를
    실현하는데 최고의 도구가 될수있다. 상임 이사국의 의미는 전 세계적으로
    지도국의 대열에 들어간다는 의미 이상이다.

    특히 전범국인 독일,일본이 상임 이사국이 된다는 것은 다른 상임 이사국들과는
    달리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는 면죄부의 의미를, 아시안들은
    알고 있기에 "반대투표."에 참여하는 것이다.


    일본은 자신들이 상임 이사국이 확실하다고 판단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미국과 여러 강대국들의 지원이 그 생각에 부채질을 했을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가 있지만 러시아는 돈푼 쥐어 주면 입 다물 것이고,
    중국역시 경제적 약점을 생각할 때 대 놓고 혼자서만 반대는 할 수없을 것이란 판단이다.

    일본의 외교적 특성은 반드시 백년대계를 세운다는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판단하기를 이제 때가 무르익었고 모든 준비도 끝났다는 판단이 섰다.
    독도의 도발은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과 연결시켜 생각해야만 한다.
    분명히 평소에 없던 도발을 한다는 것은 뭔가 현재에 그것과 관련해 일본에
    유리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은 뜻하기 대문이다.

    그것이 바로 상임 이사국 진출이고 만약 상임 이사국의 꿈이 실현되었다면
    그 전부터 꾸준한 도발을 통해 세계인들의 머리 속에 각인 시켜 온 "독도분쟁."을
    공개적으로 천명할 수있는 기회가 된다. 이 것이 최근 상임 이사국 진출을
    눈앞에 두었던 일본의 도발이 갑자기 하늘을 찌르는 진정한 원인이다.


    "드디어 때가 왔다. 그 동안 꾸준한 노력으로 세계 지도에선 다케시마로 알려져 있다.
    약 1년 후면 상임 이사국이 될 것이고 미국도 우리 편을 들것이다. 지금당장
    대대적인 도발을 해서 전 세계적으로 "다케시마 분쟁."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상임이사국이 됨과 동시에 그 권한을 이용하여 재판소나 군사력으로 빼앗는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이것이 일본의 진짜 속셈이다.
    여기서 미국이 있으니 어떻게 독도를 침략한단 말이오?
    하시는 순진한 분 있을까 봐 말하는데.....

    엄연히 이야기해서 일본에게는 밑져야 본전일 뿐이다.
    못 빼앗아도 그만이라 그 말이다.

    잘하면 단순히 섬 뺏는 정도를 넘어서 침략전쟁의 꼬투리로 쓸 수도 있다.

    당장 못 뺏는다고 그만둘 성 싶은가? 그 다음 보통국가와 천황의 국가원수화,
    징병제, 군대건설이 끝나면 일본은 미국에 상관없이 침략을 시작할 것이다.
    물론 미국은 참견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기간이 늘어난 것에 불과하다.


    강조하건데 일본족의 호전성을 절대 과소평가하지 말라.
    일본은 전쟁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민족이다.
    보통의 일본인 역시 그것은 마찬가지다.

    역사를 통틀어 국력이 넘치는 동안엔 언제나 침략의 길을 걷는 것이
    다만 일본만이 아닌 강대국으로 성장해왔던 섬나라 민족들의 본성이다.
    잉글랜드를 보라. 만나는 모두에게 싸움을 걸어 언제나 이겨 왔다.

    일본은 현재 넘치는 국력을 주체할 수 없고 내부의 불만 (잃어버린 10년,
    보통국가로의 복귀 등) 역시 상당하다. 500년 전 임진왜란을 생각해 보라.
    역사는 반복된다는 말은 간단한 것 같지만 틀림없는 진리이고 우리는 그것을 막아야만 한다.


    "때가 되었다", 고이즈미와 일본정치인들의 이러한 판단이 이번 사태의 근본적
    이유이고 상임 이사국 실패로 닭 쫓던 개 된 꼴이 그토록 쓰게 느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6. 일본의 예상과 달리 왜 사태가 커졌는가

    일본은 사태가 이 정도 까지 갈거라고 예상하진 못했다.
    가끔 보면 "일본넘들은 우리의 반응을 예상하고 다 저러는 것이다." 하는
    분들도 계시는데 엄연히 말해서 그것은 아니다.

    그러면 우리 입장에서 보면 아주 당연한, 천번만번 옳은 이러한 대응에
    왜 일본이 놀랐는지 생각해보자. (여기서 놀랐다는 것은 일본대사관 앞에서
    분신하는 것에 놀랐다는 것이 아니라 정치권에서 저런 거센 반격이 나올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이 놀란 것은 다름 아닌 정치권에서 강력한 반격이 터져나 온 것에 기인한다.

    우리국민이 뭔 짓을 하든 간에 고이즈미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물론 안중근 의사께서 환생하셔서 먼저 신따로의 심장에 저격 후 고이즈미 앞으로
    "이번엔 니 차례야... 긴장하진 말고....한방에 보내 줄께. 너무 떨지는 마." 같은 서신을
    보낸다면 약간 떨 수는 있겠다 )


    역대 한일 관계를 살펴보면 친일파가 정권을 잡고 대일굴욕 외교를 펼쳐 왔다는 것이다.
    오카모토 미노루 (박정희를 이야기할 때 다카기 마사오를 많이 쓰는데
    그것은 그가 원한 것이 아니다. 다카기 마사오는 조선인 냄새가 풀풀 나는
    이름으로 그는 그것을 창피하게 여겨 오카모토 미노루라는...순수한 일본인의
    이름으로 다시 바꾸었다.

    그가 원한것은 다카기 마사오가 아닌 오카모토 미노루이기에 우리는 그를 부를 때
    오카모토 미노루로 부르는 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가 독립군을
    토벌하던 관동군 장교출신인 것은 모두 알 것이고, 그가 "천황 폐하를 위해
    사쿠라와 같이 훌륭히 죽을 것입니다." 외치던 선서, "진충보국 멸사봉공"의 혈서 등........

    이러한 것이 상징하는 것은 그가 충실히 만주군 시절 맺어진 일본 정치인들을
    통해 친일 외교를 펼쳤고 그것은 다만 그의 때가 아닌 현재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다.

    당장 그가 맺었던 한일협정으로 우리의 할머니들은 현재도 보상한푼 못받고 살고 있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사실조차 모를 것이다.
    불과 90년대 초반 까지만해도 일본군 출신들이 정계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을.

    이러한 끈끈한 한일정계의 관계는 일본이 한국을 자극할 때마다 한일간 친밀한(?)
    정치인들이 끼어 들어 여론을 잠재우고 무마하는 일을 가능하게 했다.


    고이즈미의 실책은 현재의 한국 정계를 잘못 봤다는 것이다.

    특히 이 실책에 상당한 타격을 준 것이 그 동안 수많은 한일간 정계인맥에
    기여해 왔던 김종필이의 몰락이다. 그는 세대를 넘어 한일 정계의 친목을
    제조할 능력이 있는 단 한 명의 정치인 이었다.

    그의 몰락이 얼마나 일본으로서는 얼마나 아쉬운지 상징하는 기사까지
    나온걸 기억하는가? 대부분 주목하지 않은 기사 이지만 한 일본 정치인의
    인터뷰가 고스란히 실린 기사가 있었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예전 같으면 서로 줄이 닿는 한일 정치인들이 모여 한일관계를 회복할 수 있었을 텐데..."

    이것이다.


    현재 김종필이는 독도를 팔아먹고 배상을 불가능하게 한 한일 협정에 대해
    "나는 길만 열었을 뿐이다."라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럼 대체 누구에게 책임이 있단 말인가?

    일본은 아마도 예전과 달리 도발이 좀더 강하더라도 일본정계와 연줄이
    닿아 있는 한국의 정치인을 이용하면 그리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상임이사국이 될 때까지 버티는 것이 가능하다는 판단을 했던 것이 분명하다.


    당장 오카모토 미노루의 딸 박근혜를 보라. 맨 처음 뭐라고 한지 기억 나는가?

    "울릉군 차원에서 대응해야 한다.
    정부가 일을 크게 만들어 국익에 반하는 일을 한다."이런 말을 했다.
    이것이 바로 고이즈미가 원한 한국의 반응이다.

    도발과 전 세계적인 선전--->상임 이사국 진출--->상임이사국의 권한으로 독도침탈.

    이것이 이루어 질 때까지 그 동안 끈끈히 맺어진 한일 정치인들과
    조선일보, 지만원, 한승조가 조선땅에서 불붙는 여론을 잠재워 주길 그는 바랬다.


    하지만 그는 X나라당과 친일 정치인맥의 힘을 너무 과대평가하고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키며 독립군을 만들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외세에 대항하고 마침내 피로서 민주주의 를 이룩한 대한민국 국민의 힘도
    너무 얕잡아 보았다.

    울릉군 차원에서 대응해야 하고 조용히 실력을 기르자던 박근혜마저 불붙는
    여론을 보고 놀라서 급선회 해 버리고 만다. (일본놈들은 국가가 나서서
    수작을 꾸미는데 우리는 울릉군 차원에서 대응하란 말이 최대 야당의
    지도자가 할말이란 말인가..... 과연 오카모토의 딸답다.)


    거기다가 "피끓는 토종 조선인" 노무현대통령의 의지와 지혜를 알지 못했던 것이 분명하다.

    예전 오카모토의 꼬붕들(전두환,노태우 )과 단군이래 베스트에 들어갈
    무능력자 김영삼이가 있던 청와대와는 너무도 달랐다.


    김대중과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의 국가전략을 단순히 북한의 수준에서
    벗어나 동북아 전체를 바라보며 세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것이 가능하게 한 것은 드디어 대한민국에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려 정당한 권력이 탄생한 것에 기인한다.


    오카모토와 두환이, 태우를 보라 불법적인 권력 침탈을 미국에게
    용인받지 못하면 자신은 죽음이란 걸 알기에 외교적인 백년 대계같은 것은
    상상도 할 수없고 오로지 미국의 요구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김영삼때부터 뿌리 내리기 시작한 우리 나라의 민주주의는 마침내
    정치권에서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울 수 있게 만드는 정도로 성장 했던 것이다.

    참으로 경축할 대한민국 국민들의 힘이고 전쟁을 막지 못하는
    일본족과 다른 우리 민족의 저력이 이것이다.


    실제 오카모토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미 8군 사령관은 공공연히 쿠테타 진압의
    의지를 드러냈지만 오카모토가 반공을 제일로 내세우며 미국의 맘에 들어
    쿠테타는 성공했다.


    예전 부정한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후 미국에게 축출당할까 두려워
    미국이 가장 원하는 반공을 목에 걸고 오로지 빨갱이 때려 잡자며 육군만 키우던
    오카모토와 그 꼬붕들, 무능력자 김영삼이를 넘어 김대중은 한눈에
    동북아시아에서 국방을 위해 반드시 가져야 하는 해군을 키워야 함을 알아보았고
    이때부터 우리해군은 어느정도 비전을 세우고 성장해 나가기 시작한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2008년 F-15가 모두 들어오고 이지스함이 건조되는 것 역시 이때 시작된 계획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은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더 이상 조선반도에서 청일전쟁, 러일전쟁을 일으킬 생각일랑은 포기해라."

    말 그대로 "우리국민의 뜻과 상관 없이 동북아의 분쟁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엄연히 이야기하자면 명과 히데요시의 대결이기도 했던 임진왜란,
    조선을 놓고 벌인 청일,러일전쟁에서 우리의 강토는 피바다가 되고 시체는
    산을 이루었던 그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미, 일 동맹과 중국의 전쟁을 북한을 핑계 삼아 우리 땅에서 일으키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이다.


    미국은 절대 북한을 침공하지 않는다. 북한은 이란이나 이라크처럼 석유가 없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쓴맛을 본 후 더 이상 이념으로 전쟁에 끼지 않는다.
    유일한 경쟁국이던 소련은 이미 망해서 더 이상 경쟁국이라 할 수없는
    러시아만 이 존재한다.. 다만 석유가 있을 뿐이고 중국이나 브라질 같은
    미래의 경쟁국을 밟는 것이 현재 국가의 전략이다. 오로지 북한이라는 국가
    때문에 전쟁을 하기란 대단히 어렵다.


    이야기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는데 결론은,

    "한국의 반응이 예상외로 커진 것이 아니라 일본이 현재의 한국을 잘못 본 것이다."

    이 말로 축약할 수 있다. 이제 한국은 친일 정치인이 정치하는 나라가 아니고
    자주국방을 목표로 하는 전후 세대가 집권하고 있다.


    물론 일본도 전후 세대로 넘어 갔지만 세대만 넘어간 것이지 그 근성은
    그대로 배워먹은 놈들이라 황국 군인들이 그대로 집권한다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 두 가지 주제를 쓰는데 시간이 또 많이 걸려
    일본인의 한국인식과 중국인식은 나중에 쓰기로 하겠다.

    읽지만 말고 추천하기 바란다. 반론도 얼마든지 환영이다.
    단 다음에서만 가능하다. 퍼 가도 좋다. 출처는 밝혀 주기 바란다.


    *조선일보는 합법적으로 매일 그 위계와 사술을 구사하며, 그러나 그 누구도 섣불리 이를 문제 삼을 수 없는 사회적 흉기다.
    -김명인(문학평론가 )
     
  8. Sukhwa

    Sukhwa Member

    Jul 29, 2002
    Korea
    Some very thought provoking articles. Thanks Elliad.

    I never thought I would end up reading Korean articles on bigsoccer. :)
     
  9.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Eh, that second post by Elliad - "일본에 5년간 거주한 사람으로서 쓰는 두 번째 글" sounds like it was written by a person who failed to adapt in Japan and had anti-Japanese sentiment to begin with.

    This Fukuzawa Yukichi did support a strong Japan but I doubt historians and established thinkers will hardly consider him a national icon/hero supporting Imperial Japan. Although he did believe in dichotomal social classes, I find it incredibly hard that this eventually led into Japanese Imperialist superiority and henceforth, colonialism because he died, I believe in either 1901 or 1903 which were decades before WW2. Furthermore, he wanted to impress western powers not just by military might but with an educated populous (although this is where the dichotomy of class comes in - not everyone had equal opprotunities to learn). He was an expansionist not a simple national superiorist as the writer of the Korean articles mentions:

    Never have I heard anything like this in the Meiiji restoration era (Meiji 2). That idea probably came from Prime Minister Eisaku Sato during the 60's when he took upon the mission of Fukuzawa Yukichi to set the footsteps of a prosperous Japan in the 80's followed by Tanaka Kakuei of the Liberal Democrats shortly after.

    In the Japanese perspective I belive that these men mentioned above could be National heros although in the Korean perspective they might be absolute dicks. However, at times, I'm rather disappointed by the maturity of the Korean's in general when it boils down to simple politics. It seems to me they're giving up rationality for simple nationalism - if so, then are we any different from the Japanese?
     
  10.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yeah, actually the 2 last articles have some heavy personal 'opinions' (or bias) flavouring the content - but as with many things you are not meant to take everything as it is, but to sift thru' for 'valid' info :)
     
  11.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Well having a lot of Korean college friends (the dudes who actually go to college in Korea) does sometimes annoy you because of their stupidity. And they call Americans ignorant. Those guys are the guys who reads things like this and "knows it all". Offense not directed to you, ForzaKR.
     
  12.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I agree with you but I wish that article had references.
     
  13.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ForzaKR?

    I agree with you but I wish that article had references.

    hm, the 1st article posted here was found from Daum Media - it's like a professional newspaper article, so it's a bit much to ask for references on it. But "일본에 5년간 거주한 사람으로서 쓰는 두 번째 글" is just a personal account thus it is bound to be containing some bias.
     
  14.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Ah Forza is goes to 서강대. Didn't want him misunderstanding. Well all in all, that was a great read, Elliad. Sorry but I can't give you and more positive reps for the time being. :)
     
  15.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oh no, I didn't take any offence or anything - it's always good to have constructive criticism/opposing views - besides, I did dig out those articles but it doesn't mean I'm in complete agreement with them :)

    Heh, maybe we should notify Forza of this thread when he finishes his exam and see what his takes on these issues are - it may get interesting :cool
     
  16.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일본 스스로 수차례 독도 영유권 부정"


    [이슈 인터뷰] '독도연구' 한 평생 최서면 명지대 석좌교수

    한·일 수교 40년, 연륜으로는 흔들림 없이(不惑 ) 반석에 올라야 할 한·일 관계가 위기를 맞고 있다.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 )의 날' 제정으로 촉발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4년 만에 재연된 역사 왜곡 교과서 파문 때문이다. 한·일 양국 정치인들과 교분을 쌓으며 평생을 독도 연구와 한·일 관계 사료 발굴에 매달려 온 원로 학자는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최서면(77.崔書勉 ) 명지대 석좌교수 겸 국제한국연구원 이사장을 만나 한·일 양국 정부와 국민에게 주는 메시지를 들었다.

    -일본 정치인들이 독도 문제를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해결하자고 주장합니다.

    "4년 전 한 파티장에서 주일 러시아 대사가 나를 보더니 대뜸 '이제 한국 사람들의 얘기를 알아듣겠다'고 하더군요. 일본 사람들과 쿠릴열도 4개 섬 문제를 토론하던 중 '정 합의가 안 되면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해결하자'고 했더니 일본 사람들이 '왜 우리 고유 영토인데 가느냐, 말도 안 된다'고 대답하더라는 겁니다. 그런데 일본이 독도에 대해서는 계속 국제사법재판소를 주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자신들의 입장이 약하다는 방증입니다. 개인과 개인의 분쟁에서도 재판소에 가자는 소리를 약자가 먼저 하지 않습니까.

    일본이 이 주장을 먼저 꺼낸 게 1950년대인데 그때 제시한 근거는 후속 연구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일본 학자들도 부정하고 있거든요. 우리 정부는 일본 정부에 새로운 근거가 있으면 제시해 보라고 요구하는 게 현명한 대응책입니다."

    -일본이 독도를 고유 영토로 주장하는 근거가 엉터리로 밝혀졌다는 얘긴가요.


    <그래픽 크게보기>


    "일본 정부의 고유 영토론의 바이블에 해당하는 책은 66년 가와카미 겐조(川上健三 )가 편찬한 '다케시마의 역사지리학적 연구'입니다. 외무성의 협조로 방대한 문헌을 조사해 집대성한 책이죠.

    거기엔 조선시대 공도(空島 ) 정책으로 비어 있던 울릉도와 무인도인 독도에 일본 사람들이 왔다갔다하면서 고기잡이를 했다는 고문헌 기록이 많이 제시돼 있습니다. 그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일본 정부가 스스로 여러 차례 도항 금지령을 내리고 영유권을 부정했다는 것입니다. 1837년 아이즈야 하치에몬(會津屋八佑門 )이란 사람이 이를 어기고 울릉도까지 갔다온 뒤 처형당한 기록도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고문서가 있더라도 그건 잠상(潛商 ), 지금 말로 하면 밀무역에 지나지 않고 영유권과는 상관없는 기록이라는 것이죠.

    보다 쉬운 예를 들어볼까요. 조선왕조실록에는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인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가와카미는 92㎞나 떨어졌는데 그럴 리 있느냐, 그건 독도가 아닌 다른 섬을 말하는 것이라며 꼬투리를 잡습니다. 한국 측 기록이 엉터리라는 거지요. 나도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울릉도의 한 교사가 실제로 독도 사진을 찍었습니다. 평지에선 안 보이지만 조금만 높이 올라가면 지금도 보입니다. 전망대도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 실록의 기록을 믿어야지요."

    -일본도 고지도를 근거로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내가 지금까지 수집하거나 확인한 일본 고지도만 해도 1000여 점이 넘습니다. 그중엔 물론 일본 땅으로 표시된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도 자체가 엉터리라면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측량기술이 없던 시대에 잘못된 지도를 서로 베껴 엉터리가 확대 재생산된 경우도 많습니다.

    영유권 다툼에서 제일 권위가 있는 것은 정부가 편찬한 관찬(官撰 ) 지도입니다. 일본의 도쿠가와 막부는 관찬 지도를 모두 네 번 만들었는데 이 가운데 독도.울릉도가 나오는 지도는 한 장도 없습니다. 이노 다다타카(伊能忠敬 )란 사람이 만든 마지막 관찬 지도는 정확성 면에선 지금도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지도인데 거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독도 대응책은 양론이 있습니다. 우리가 실효 지배를 하고 있으니 차라리 무시하는 것이 좋다. 일일이 반응하면 오히려 분쟁지역으로 삼으려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라는 입장이 전통적으론 우세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통령의 의지에 따라 강력 대응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어느 나라 국민이든 영토를 지키려는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잘못 알고 떼를 쓰는 것은 바로잡아 줘야지요. 한국 정부는 구체적인 자료를 일본에 소개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예전에 내 강연을 들은 한 자민당 국회의원은 '그동안 너무 몰랐다. 이제 다시는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겠다'고 말하더군요. 인내심을 갖고 계몽하면 이해하는 일본인이 적지 않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합니다. 그런 노력을 하지 않고 과잉대응해 적이 아닌 사람까지 적으로 만드는 것은 서투른 방법입니다."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이제 4년마다 한 번씩 반복되게 돼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빚어지는 근본 원인은 무엇입니까.

    "일본의 전범 재판은 연합국이 했지 일본인 스스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때문에 일본 국민의 전쟁 범죄에 대한 인식이 불충분한 상태였는데 국제 정세에 따라 일본과 미국이 급속히 가까워지면서 반성의 여지가 사라져 버린 거지요.

    이런 현상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근본 원인은 교육에 있습니다. 좌파는 전쟁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고 반성하지만 비좌파는 반성을 하지 않는 양상이 교육의 혼란을 가져왔습니다. 교과서에 일본의 반성이 들어가지 않으면 과거사 문제는 언제든 재연할 수 있는 혼란의 요인입니다."

    -일본에선 이미 여러 차례 사과했는데 또 하라고 하니 불쾌하다는 반응도 있습니다.

    "그런 질문을 일본인에게 많이 받는데 나는 그때마다 단호하게 얘기합니다. 왜 당신들은 한 번에 못 끝내느냐, 당신들은 사과한 횟수를 세고 있는데 나는 총리의 사과가 다른 각료들의 망언에 의해 부정당한 횟수를 세고 있다고 말합니다. 과거에는 각료들의 망언이 있으면 총리가 장관을 바꿔 극복해 나갔는데, 요즘 정부는 그런 성의도 보이지 않는군요.

    야스쿠니(靖國 ) 신사 참배도 총리에게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엔 전쟁 희생자에게 조의를 표하는 기관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A급 전범도 같이 모신 야스쿠니 신사이고 하나는 지도리가부치(千鳥淵 )의 무명 용사 묘지입니다. 이 두 곳 가운데 일왕은 절대 야스쿠니에 가지 않고 지도리가부치에만 갑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우린 일본 사람에게 이런 점을 강조해야 합니다."

    -바람직한 한.일 관계를 위해선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요.

    "일본은 더욱더 진정한 반성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을 가르쳐 주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 있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아무것도 안 하면서 화부터 내는 건 건강한 방법이 아닙니다. 한국 사람에게는 아직 풀리지 않는 한이 있다, 이를 안 풀어 주면 화합도 없고 미래 지향도 없다, 그렇게 설득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본이 침략을 잘못한 일이라고 알게 하는데 40여 년이 걸리지 않았습니까."

    -한국과 일본은 숙명적으로 늘 싸울 수밖에 없다는 견해도 있던데요.

    "나는 일본에 오래 살면서 한.일 양국이 충돌하는 순간을 많이 봤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떻게 해결됐느냐면 일본 안에서 한국을 소중히 하는 세력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러지 말고 우리가 참고 타이르자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문제가 풀리더군요. 중요한 것은 싸워도 미래 지향이란 대전제 하에 싸워야 한다는 겁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한국과 우호를 소중히 여기고 한국 문화를 존중하는 일본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의 망언이 전체 국민을 대변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는데, 길게 봐야 합니다. 일본은 왕인 박사를 비롯해 우리 선조가 건너와 만든 나라이므로 그 문화의 근저에는 어딘가 우리하고 같은 것이 있다는 인식을 해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침묵하는 양심이 목소리 큰 비양심 세력보다 더 많다는 것입니다.

    나는 일본에서 안중근연구회를 만들고 강연하러 다녔습니다. 안중근이 누굽니까. 일본인이 가장 존경한다는 정치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를 암살하지 않았습니까. 가만뒀으면 교육자로 삶을 끝냈을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느냐, 그 동기는 당신들이 제공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당신들이 안중근을 다시 연구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습니다. 요즘은 안중근을 흠모하고 평가하는 일본인이 많이 생겼습니다. 나는 이런 것이 한.일 간에 맺힌 앙금을 해소하는 씨앗이 된다고 봅니다."

    -한.일 관계에 교훈이 될 만한 사례가 있나요.

    "문세광 사건의 경우가 대표적이지요. 국교 단절 주장까지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습니까. 일본도 우리가 뭘 잘못했느냐며 반발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때 시나 에쓰사부로(椎名悅三郞 ) 외상이 극단으로 가서는 안 된다면서 결단을 내렸습니다. 한국에 가 박정희 대통령에게 사과했지요. 그것이 계기가 돼 한.일 관계는 회복됐습니다. 시나 외상의 용기가 지금 이 난국을 헤쳐나가는 데 필요하다고 봅니다."

    만난 사람 = 예영준 도쿄특파원<yyjune@joongang.co.kr>


    *** 최서면 석좌교수는

    ‘걸어 다니는 사전’으로 불릴 정도로 한일 관계사 및 독도 연구 권위자. 1957년부터 일본에 살면서 안중근 의사 옥중수기, 명성황후 시해 관련 사료,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돼 있던 북관대첩비 등 숱한 사료를 직접 발굴했다. 한일 양국의 거물급 정치인과의 깊은 친분으로 공식 외교의 막후에서 자문·조정 역할을 하기도 했다. 1988년 서울에 국제한국연구원을 설립한 뒤에는 한일 양국을 오가며 사료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최근 10년동안은 도쿄 도심의 외교사료관 서고에 묻힌 한국 관련 자료를 섭렵하고 방대한 목록을 출판했다.

    2005.04.20 20:41 입력 / 2005.04.20 20:45 수정

    http://news.joins.com/opinion/200504/20/200504202041266301100010101012.html
     
  17.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비난보다는 비평. 비평보다는 칭찬. 과거사를 생각하면 피가 끓습니다만 이제는 한국의 외교정책도 일본에 한걸음 한걸음 다가서는게 더 낳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조건 나쁘다만 하지 말고 우리가 먼저 타이르는 게 효과적일 것 같군요. Elliad 형, 잘 읽었어요.
     
  18.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음, 맞아, 무조건 매도에 비난은 좋지 않은 일이지 - 물리 역학을 보아도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생기듯,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선다면 처음엔 별 생각이 없던 이들도 반발적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 - 얼마 전에 NSR에 있었던 독도 쓰레드를 보더라도, 이곳의 일본계 유저들은 그들에게 독도 문제는 원래 관심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안이라서 시큰둥하던 분위기였는데, 몇 몇 비난조의 글이 올라가니까 발끈하면서 일본 측을 우호하는 태도로 바뀌었었잖아 (마리아 S, 타코 등등 ). 만약 처음부터 꾸준히 이성적으로 그들이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는 입장을 취했더라면 그들도 더 수긍하기가 쉬웠을지도 모르지 - 사실 이런 외교 분쟁은 사실 국가와 개인적인 자존심이 많이 연관되어 있잖아. 그러니 설령 자기가 틀렸고 또 그 사실을 안다해도 끝까지 오기를 부리며 부인하는 경우가 자주 생기는 법이지, 특히 이런 웹 상에서는. 그러다가 감정 표현이 격해지고 싸우다가 결국 그 토론은 흐지부지해지고 .

    이런 글을 찾아서 올리는 이유는, 반일이나 반중, 반미의 분위기를 조성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냥 읽어두면 좋을 것 같아서야 - 전에 몰랐던 사실들, 가령 일본에 야스쿠니 외에 지도리가부치라는 곳이 존재하다는 것 같은 것- 일단 우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어야지 다른 이들과 토론 (설득 )을 할 때 아무래도 조금 더 수월하지 않겠어?

    어쨋든, 읽어줘서 고마워 :)

    (Argh, all this 반말 korean's killing me - I'm getting more goosebumps than when I was using the 경어 - too familiar for the sake of it :p ))
     
  19.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This article is a couple of months old, written in response to a newspaper column by a Japanese sportswriter named Yoshizaki, who 'hoped' for both SK and NK to lose their respective WCQ matches.

    Btw, the current symbol of the JFA, the three-footed Crow, was also the national symbolic bird of Koguryo.

    근래 일본언론의 협오성 한국축구발언에 대하여


    한국인이 일본대표팀을 절대로 응원할 수 없는 것은 비단 역사적인 감정이 있어서 만큼은 아닙니다. 물론 개중에 일본대표팀을 응원할 사람도 있겠으나, 필연적으로 한국인이 일본대표팀을 응원하는 것은 단순한 역사적 감정의 차이를 넘습니다.

    일본은 단순한 과거의 가해자가 아니다. 축구에 있어 그들은 숙적(Rival )이기 때문이지요. 많은 사람들은 라이벌Rival이라는 단어가 동등Equal이라는 단어와 상관관계가 있음을 읽지 못합니다. 우리는 애써 중국의 패배를 원하지 않지요. 그것은 심정적으로 중국은 아직 우리의 숙적Rival이 아니기 때문이 아닐까요? 그리고 그 것은 중국이 아직 우리의 수준에 오르지 못했다고 느끼는 우리 축구팬들의 심리적 태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닌지. 다만 아시아에서 우리와 대등한 대결을 펼칠 수 있는 나라는 적어도 우리의 심정적 인식에 있어서는 일본입니다.

    "일한(日韓 ) 킥오프 전설 - 숙명의 대결에 숨겨진 [한 ]과 [정 ]" 이라는 책을 쓴 오오시마씨는 책의 후기에서 [베를린의 기적 ]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한홍기 옹을 취재할 당시, 오오시마씨는 베를린올림픽에서 일본대표팀이 스웨덴에게 승리한 것, 그리고 그 일본대표팀에 식민지 조선의 선수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가 한홍기 옹에게서 그때의 일화를 듣습니다. 그리고 그의 반응은 [놀라움 ]이었지요.

    대한축구협회의 축구자료 전시실에는 1938년 조선축구협회(대한축구협회의 전신 )의 협회기가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구하기 어려운 희귀자료로 존재하는 것이 세발까마귀(야타가라스三足烏 )를 문양으로 한 조선축구협회의 깃발입니다. 참으로 묘한 감정이지요. 라이벌의 엠블럼을 쓰고 있는 자국협회의 깃발을 바라보는 마음 만큼이나 묘한 것인 한일의 관계입니다.

    일본인들에게 한국은, 적어도 축구에서 만큼은 지겨운 [숙적 ]입니다. 자신들의 과거의 영광속에 숨어있는 이 지긋지긋한 라이벌. 일본고교축구대회 최다골 기록을 이야기 할때 일본축구인들은 시립 후나바시 고교를 이야기 하면서도 그들의 역사 뒷편에는 이를 상회하는 기록을 가진 평양의 보성고등보통학교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코베제일중학교가 [타도조선 ]의 기치를 달고 훈련을 위해 학교 운동장을 뛰어 다니던 1930년대 든(결국은 결승전에서 보성중학교에 비겼음 ), 조직적인 축구를 강조하는 일본대표팀에 나타난 개성 강하고 근성있는 조선 선수들을 탈락시킨 베를린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팀이든, 그들은 축구가 아시아에 보급된 20세기 초 부터 부던히 그들의 역사에서 [조선(그것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의미하든 대한민국을 의미하든 )] 이라는 이름 두자를 지우기 위해 무던히 애 썼습니다. (애석하게도 나카타 히데토시라는 귀화 재일 조선인의 자녀 역시도 현대 일본축구의 영웅이 되어 있는 것은 엄청난 아이러니 이지만 )

    그러나 [도하의 비극 ]의 수혜자는 [대한민국 ]이었습니다. 1998년 월드컵 예선에서 가모 슈 감독의 목을 친 것도 [대한민국 ]이었습니다. 단독개최가 유력하던 2002 월드컵의 절반을 가져간 것도 [대한민국 ]이었습니다.

    과연 일본축구의 역사에서 몹쓸 이웃, [대한민국 ]은 지워질 수 있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요시자키씨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가 아무리 한국 축구에 대한 지식과 애정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것은 우리가 일본축구를 향해서 가지는 마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가 표리부동한 일본인이건 아니건, 저는 그의 한국축구 도락(道樂 )이 절대로 방향성을 잃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일/본/인 ] 입니다.

    그것은 영국인이 독일을 응원하지 않는 것과, 아르헨티나인이 잉글랜드를 응원하지 않는 것과, 그것은 독일인이 프랑스를 응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어떠한 상대와 대결을 펼치든 일본이 지기를 원합니다. 까놓고 이야기 하시지요. 그렇지 않습니까? 한국인이 일본을 응원할 수 있을까요? 이기길 바라나요?

    그것이 숙적, 즉 라이벌rival입니다.

    요시자키가 한국이 지기를 원하는 것은 우리민족에게 짓눌린 일본인의 마음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요?

    저는 요시자키와 같은 지한파(知韓派 )가 단순히 우리가 지기를 원했다는 이유로 매장당하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가 우리의 승리를 바라지 않음은 당연하며(우리도 그들의 승리를 원하지 않으므로 ) 그는 타고난 [일본인 ]입니다.

    그의 몇마디에 왈가왈부할 만큼 한국의 축구팬들이 수준낮지 않음을 믿으며, 일본인의 속내에 대해 일견 혼네(本音 )를 보여준 그의 컬럼이 반가운 것은 저 뿐만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축구의 역사란 몇몇 라이벌들이 쌓아올리는 것. 맨유와 아스날이 서로를 증오하듯, 증오의 자양분을 빨면서 자라는 [자긍심pride ]이라는 열매를 생각한다면 당연스러운 받아들임이 가능하지 않을 런지요.

    때문에 요시자키씨의 [남북 동반 녹 아웃 ]이라는 발언에 담담한 것은 저만의 반응이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27년동안 단 한차례의 패배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우리를 눌러야 겨우 역대전적이 같아지는 일본.

    반대로 생각해 보죠.

    대 일본전 67전 38승 18무 11패의 기록.

    우리가 1년에 몇번이나 일본을 만나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많아야 1번? 일본대표팀이 역대 전적에서 우리를 앞서기 위해서는 앞으로 스물일곱번을 이겨야 합니다. 1년에 1번 만난다고 해도, 일본은 적어도 27년 동안 계속해서 국가대표간의 경기를 승리해야 합니다. 물론 단한번의 패배도 없이.

    이 27년의 차이, 이 벌어진 27년은 단순한 숫자는 일본인에게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자랑스러운 축구전통을 가진 우리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워 봅시다.

    PS:
    보성고보(평양 )가 일본고교선수권대회 최다득점기록을 가지고 있으나, 대한축구협회의 고교선수권대회에 참가하지 못하는 것은 진정한 아이러니가 아닐지요. 그럼에도 개인적으로는 북한의 축구전통은 통일이 되어도 독립된 협회(스코틀랜드나 웨일즈와 같은 )로 남아 독립적으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20.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Nice article. Do you have the original article written by Yoshizaki, Elliad?
     
  21.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Ah, I did read it, but didn't bother to save it :) I didn't really think much of it, but it did stir bit of a controversy back a couple of months ago.

    Ah, just did a search in the SW and found some stuff written by/about him - have a read, it's quite interesting. But I couldn't find the article you are looking for... Google?

    http://soccer1.ktdom.com/bbs/zboard...요시자키&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47098

    http://news.naver.com/sports/new/vi...=news&office=poktannews&article_id=0000007386

    http://soccer1.ktdom.com/bbs/zboard...요시자키&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6305

    http://soccer1.ktdom.com/bbs/zboard...요시자키&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39105
     
  22. Hyok

    Hyok Member+

    Sep 4, 2002
    California
    Some linguists believe that the Japanese word for crow comes from "Kara", an ancient Japanese word for Korea, and "su", an ancient Japanese word for bird, which incidentally sounds similar to the Korean, "sae."
     
  23. Hyok

    Hyok Member+

    Sep 4, 2002
    California
    I wish my Korean was better. so that I can read those articles. Too many Hanja-based words.
     
  24. Deleted Users

    Deleted Users Member+

    Nov 25, 2001
    Wow this Yoshizaki guy..I've heard of him somewhere before and have also heard that if he ever prowled the streets of Seoul he probably would get jumped. LOL.

    겉보기엔 친한파인척
    하지만 일본기자들이랑 있을때는 한국축구 까대기에 열중한다는 이야기도 들립니다


    친한...I don't think any Japanese is really 친한 - anyway that's another topic.
     
  25. Elliad

    Elliad Member

    Jun 22, 2002
    Sydney, Australia
    ah, thanks for that.

    I 'could' translate them, but that's so much work, hehe. I don't know how many ppl are interested in these artic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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